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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한몸소식

[가톨릭평화신문]하느님 말씀 종이에 쓰고, 돌에 새기며 마음을 치유하다

관리자 | 2022-01-23 | 조회 969

 

하느님 말씀 종이에 쓰고, 돌에 새기며 마음을 치유하다

[하느님의 말씀 주일에 만난 사람] 캘리그라피·전각 작가 유임봉

 

 
▲ 두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마태오 복음서. 그가 붓으로 복음서를 한 줄 한 줄 써내려 가고 있다. 유임봉 작가 제공



“전시회를 하면, 제 작품을 보시는 분들이 ‘스테파노 선생님, 존경합니다!’ 하시는데, 저는 매일 집에서 성경 필사하는 분들이 더 존경스럽습니다. 성경을 몇 번이나 완필하신 분들도 계시고, 일상에서 그렇게 성경 필사를 하는 분들의 믿음의 깊이에 견주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저 저는 얕은 재주로 드러나서 보여지는 것뿐이에요.”

서울 성산동성당 인근에 있는 3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만난 유임봉(스테파노, 56)씨는 하느님 말씀을 종이에 쓰고, 돌에 새기는 캘리그라피ㆍ전각 작가다.

캘리그라피가 부드러운 붓으로 가벼운 종이에 글을 써내려가는 작업이라면, 전각은 날카로운 칼로 무거운 돌에 글을 새기는 작업이다.

“붓으로 글을 쓰는 과정은 종이를 먹물로 덮는 것이기에, 과거의 아픔과 시련을 덮는 과정입니다. 거꾸로 전각은 돌을 파내는 것이기에 덜어내는 것이지요. 결국 삶의 과정이 이 안에 다 들어가 있더라고요.”

상반된 재료로 상반된 과정이 공존하는 두 작업의 중심에는 하느님 말씀이 있다. 그는 복음 말씀을 마음의 중심에 담고, 상반된 두 과정을 오가며 마음이 치유되는 선물을 받았다.


 
▲ 캘리그라피 및 전각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임봉씨는 “하느님 말씀을 잘 작업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픔을 딛고 복음 말씀을 쓰다

글아캘리아카데미에서 학생들에게 캘리그라피를 가르치며, 가톨릭글씨문화연구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유 작가가 캘리그라피와 전각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는 오랜 시간이 되지 않았다. 20년 넘게 중소기업과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살았던 그가 글씨를 쓰기 시작한 건 2016년 형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지 보름이 지나서였다.

“형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뒷일을 수습하면서 불면증과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우울이라는 질병은 밤에 잠을 못 이루게 했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정리하게 만들었다. 정신과를 다니며 3∼4개월 약을 먹어야 했다.

“하루는 의사와 상담을 하는데, 의사는 진료실 뒷자리에 있는 캘리그라피 액자를 가리키며 ‘이런 것도 해보시고, 취미 생활을 해보시라’고 권했습니다.”

어려서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붓펜을 하나 샀다. 딸은 붓펜으로 글씨를 써보는 아빠에게 “아빠 글씨 잘 쓰는데, 써서 인스타그램에 올려 보라”고 응원했고, 그는 구독하고 있던 잡지 ‘가톨릭 비타콘’에 나오는 문장과 단어를 써보기 시작했다. 물론 인스타그램도 시작했다. 성경 구절을 써 내려간 그의 단어와 문장에 감탄한 이들이 그를 팔로우하면서, 그의 사회적 관계는 다시 연결되고 회복되기 시작했다. A4용지에 복음서를 필사하면서, 치유를 맛봤다. 그는 본격적으로 캘리그라피를 배웠고,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에서 자격증도 땄다.

그는 캘리그라피 작업을 할 때마다 낙관을 찍어야 해, 수제 도장을 파러 갔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던 전각가는 ‘스테파노’를 ‘스데파노’로 잘못 새겨줬다. 그는 내가 직접 파보자 싶어, 전각을 배운다. 잘못 파진 낙관이 그가 전각의 세계에 발을 들인 계기가 됐다. 그는 설고 이세웅(베드로) 전각가에게 전각을 배웠다.


 
▲ 복음 말씀을 전각하고 있다.
 
 
▲ 세례명 낙관.



붓질로 덮고, 칼질로 비워내며


2019년 9월, 그는 명동대성당 지하1층 갤러리 1898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다니던 보험회사는 첫 개인전을 연 그해 말에 그만뒀다. ‘마르코 복음서를 쓰고 새기다’를 부제로 한 첫 개인전에는 가로 63cm, 세로 190cm 화선지에 써 내려간 마르코 복음서를 선보였다. 화선지에 쓰는 붓글씨는 틀릴 때마다 종이를 버리고 새로 써야 했다. 8장을 버리고 9장째 성공했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79×150㎝ 크기의 옻지에 쓴 마태오 복음을 내걸었다.

그는 전각 작업을 할 때는 유튜브로 묵주기도를 틀어놓고, 글씨를 쓸 때에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틀어놓고 작업에 임한다. 그에게 작업 시간은 곧 하느님 말씀을 새기며 기도하는 시간이다.

유 작가는 캘리그라피 액자와 도록 및 도장 판매 수익금을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에 기부했다.

“형님의 죽음은 가족에게 큰 아픔이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캘리그라피와 전각을 하게 됐지요. 전시할 때마다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자살예방을 위해 쓰기로 한 것은 제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그는 최양업ㆍ김대건 신부의 편지 모음 책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와 「이 빈들에 당신의 영광이」 표지 서체도 썼다. 지난해 성 김대건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바오로딸이 선보인 천주교 교우패 ‘나는 천주교인이오’도 그의 글씨다.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 해마다 순교자 성월에 순례를 완주한 이들에게 주는 축복장에 이름을 써주는 봉사도 가톨릭글씨문화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유 작가는 마르코, 마태오에 이어 루카와 요한으로 이어지는 복음서를 주제로 한 개인전을 마무리하는 게 꿈이다.

“전시장에서 복음 말씀이 쓰인 작품을 보고 울고 가시는 신자들을 보면 전율을 느낍니다. 내가 작업한 결과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졌구나 싶은 거죠. 다른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써서 보인다는 것은 내가 한 획 한 획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에, 이 마음을 강박 수준으로 다짐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형외과에서 손목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일을 오래 했으면 좋겠다”면서 “하느님 말씀을 잘 작업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맞다. 종이를 펴고 마음을 하얗게 비워야 붓 길이 허락되었다. 천 번이 넘는 칼질이 있어야 단단한 돌을 비워낼 수 있었다. 그렇다. 그렇게 거침없이 정상을 향해 사자처럼 달려왔던 산에는 참 많은 것들이 있었다. 나무와 풀, 여기저기 숨어있는 꽃과 풀벌레들, 새들의 지저귐과 계절의 바람들, 향기들…. (중략) 끝없이 비워낸 곳에 부디 주님 영광 가득 채워주시기를 청해본다.”(작가 노트 중에서)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