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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

보이지 않는 손

윤경중 요한보스코│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명운동부장

나는 경제학을 잘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란 말은 애덤 스미스(1723-1790)의 ‘국부론’에 등장하는 말인 것은 안다. 이는 누구나 다 알듯이 시장경제의 원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대단히 유명한 말이다. 애덤 스미스가 이 말을 어떤 의도로 사용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아주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일생의 행동을 다스리는 원리를 늘 갖고 있었다. 인간의 일상적 존재의 이유와 삶의 방법을 설명하는 이 원리가 바로 ‘세계관’이다. 그런데 한 사회의 세계관에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동하고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 그들의 세계관이 자신과 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회의 세계관에 대해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배게 됨으로써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세계관이야말로 인간의 역사와 삶을 지배하는 진정한 의미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지배하는 세계관은 무엇일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끊임없는 지식과 기술 축적의 결과 때문에 세계가 보다 나은 상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물론 지구의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어느 정도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우리의 행동양식을 지배한다. 또한 개개인은 자립적인 실체이고 자연은 질서 정연하며, 과학적인 관찰은 객관성이 있으며, 사람들은 항상 사유재산을 갈망한다. 따라서 사람 사이에는 경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심지어 이 모든 믿음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불변하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세계관은 현실에 대한 인간의 지각 작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의 신앙과 세계관의 괴리가 발생한다. 우리의 삶을 온전히 지배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자리에 신앙이 자리해야 하건만 세계관이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주일에만 신앙생활을 하는 형식적인 신자가 되게 하고 우리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다.

이제는 되물어야 할 때이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재의 세계관이 과연 타당한가를 말이다. 과학적이고 개인 중심적이며 경쟁이 만연한 이 사회에, 우리의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가 그렇게 바라고 희망하는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인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쓰게 될 글에서 우리의 신앙관이 세계관을 대치했을 때 우리는 ‘희망’이 있음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이다.

* 지난 8월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란에 게재된 글 5편을 차례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