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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구원의 끝은 어디인가?

하느님 구원의 끝은 어디인가?

윤경중 요한보스코│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명운동부장

우리 교회 신앙의 중심부에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즉 하느님의 육화(肉化)에 관한 신앙고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육화(肉化)의 의미는 인간의 구원이다. 교회는 이 역사적인 메시지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세상의 모든 것을 해석하고 통찰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이천 년 동안 믿고 고백해 온 신앙이다.

‘육화(肉化)’란 곧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의 근거인 전(全) 창조세계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무한하신 하느님께서 유한한 세상에 오시면서 수많은 당신의 창조물 중의 한 종(種)인 인간의 구원만을 위해 오셨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전인수가 아닐까라는 의문이 오늘날 발생하는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와 함께 나의 마음을 흔든다.

복음 속에 표현되고 있는 예수님의 자연에 대한 이해들은 이런 의문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를 놀랍게 관찰하고 설교하셨다. 하늘의 새들도, 들에 피는 꽃도 모두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고(마태 6,26-30), 씨앗 뿌리고 성장, 추수하는 것 모두는 자연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마르 4,3-8)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어떤 인간의 내적 속성의 빛에서 기술하려고만 하지 않으시고, 창조(자연) 안에서 하느님을 증거하려고 하셨다. 이는 ‘모든 자연세계도 하느님을 말할 수 있고,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으며, 하느님을 직관할 수 있는 능력들을 지니고 있다’는 예수님의 세계관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신자들의 구원관이 전적으로 이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보기에 현존하는 자연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자칫 소홀히 할 수 있는 여지를 안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보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구절에 총체적인 구원관이 잘 드러나고 있다. 저편 하늘나라에서의 구원과 더불어 뒤이어 땅에서의 구원이 더 강조되고 있다. ‘이 땅’이라는 말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지금’과 ‘여기’로 표현할 수 있겠다. 바로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시간, 이 자리가 구원의 장소인 것을 드러내 주는 대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본다면 나를 포함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모든 자연을 구원의 대상으로 확대해 보려는 나의 생각이 그리 잘못된 비약은 아니라는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려본다.

연일 공중파에서는 환경문제로 몸살을 앓는 지구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조금은 늦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매일 바치는 우리의 기도 안에 하늘도, 땅도, 바다도 우리의 소중한 이웃으로 포함시켜야 할 때라고 목청껏 외치고 싶다.